귀촌과 함께 시작한 반자급 자립 생활기
1. 도시의 편리함을 내려놓고 자급 생활을 택한 이유
도시에서의 삶은 편리함으로 가득하다. 클릭 한 번으로 배달음식이 도착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겨울에도 반팔로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편리함이 오히려 나의 삶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매달 고정지출을 위해 일하고, 퇴근하면 쇼파에 널브러져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 생활. 편리한 일상 속에 생명력은 점점 사라지고, 정신은 피로해졌다.
귀촌을 결심하게 된 건 단순히 자연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느낌’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 가스레인지 대신 장작불을 피우고, 손으로 흙을 만지고, 직접 거두어 먹는 삶. 그런 생활이 주는 리듬이 도시의 소비 중심적 삶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걸 자급자족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반(半)자급 자립'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했다.
전력은 태양광 일부, 음식은 텃밭에서 가능한 것만, 물은 지하수와 수도 혼합. 처음부터 완전한 자급이 아니라, 내가 감당 가능한 만큼만 ‘직접 해결하는 영역’을 늘려나가는 방식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이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였다면, 귀촌 이후의 생활은 하나씩 주도권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중심을 다시 ‘내 손’으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2. 반자급 텃밭 운영, 먹거리의 통제권을 되찾다
귀촌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텃밭 운영이었다. 넓지 않은 마당 한켠, 10평 남짓한 공간에 고랑을 만들고 퇴비를 섞은 뒤, 초봄에는 상추와 열무, 늦봄에는 토마토와 오이, 여름엔 가지와 고추를 심었다. 모두 유기농이었고, 비료와 농약은 사용하지 않았다.
텃밭을 운영한다는 건 단순히 채소를 먹는다는 의미를 넘는다. ‘내가 먹는 음식의 흐름을 알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행위였다. 한 포기의 상추가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벌레와 경쟁해야 하는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도시에서 무심코 먹던 식사 한 끼의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텃밭이 모든 식량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쌀은 여전히 사먹고, 고기도 마트에서 산다. 하지만 내가 먹는 채소의 50% 이상을 직접 길러 먹는다는 것은 생존력과 자존감을 동시에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늘어나고, 계절의 흐름에 따라 식탁이 바뀐다. 이런 변화를 경험하면서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산하고 있다는 감각이 삶의 깊이를 더해줬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고랑이 무너지고, 태풍이 지나가면 작물이 망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그 과정은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다는 실감으로 다가왔다. 반자급 텃밭은 내게 생존의 기술이자, 정서적인 안정의 기둥이 되었다.
3. 전기, 물, 난방까지… 생활 인프라의 점진적 자립
반자급 자립 생활의 핵심은 ‘완벽함’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 그리고 그 불편함을 견디며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먹거리 다음으로 접근한 영역은 전기, 물, 난방 등 생활 기반 시설이었다.
전기는 기본적으로 한전에 의존하되, 옥상에 소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낮 동안 사용하는 일부 가전(노트북, 조명, 소형 냉장고 등)은 자체 전력으로 해결했다. 대규모 시스템은 비용과 설치 인허가 문제로 부담이 컸지만, 부분적인 태양광 활용만으로도 전기요금 절감 효과와 동시에 자립감을 높일 수 있었다.
물은 수도와 지하수를 병행했다. 주방과 욕실은 수도를 사용하되, 빗물 저장탱크와 지하수를 농업용수 및 외부 청소용으로 활용했다. 빗물은 의외로 활용도가 높고, 간단한 정수 시스템만 있어도 텃밭 물주기나 외부 청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또한 일상 속 소비 패턴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난방은 도시가스 대신 장작보일러와 전기온풍기를 병행했다. 겨울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직접 넣어 집을 데우는 방식으로 바꿨다. 당연히 손이 많이 가고 불편하지만, 불을 피우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루틴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이처럼 생활 인프라 전반을 완전히 자립하기는 어렵지만, 각 요소에서 30~50%라도 내가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바꿨다는 점이 내 삶의 질을 바꿨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얻은 ‘생존력’과 ‘주체성’은 도시 생활에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4. 반자급 자립의 삶이 가져다준 변화와 확장 가능성
귀촌과 함께 시작한 반자급 자립 생활은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넘어, 삶의 철학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돈이 없어도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장작을 패고, 필요한 물건을 수리하며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 대한 신뢰와 가능성의 범위가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삶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텃밭 작물, 빗물로 세차해주는 이웃의 차량, 겨울철 장작을 나누는 문화까지, 자립을 통해 연결되는 공동체의 힘도 경험할 수 있었다. 완전한 자급은 어려울지 몰라도, 서로의 자급력을 나눌 수 있다면 집단적 자립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온다.
현재 나는 이 생활을 블로그와 영상으로 기록하며 또 다른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반자급 자립은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된 시스템이 될 수 있다.
텃밭을 주제로 한 소규모 강의, 전기 절감법을 소개한 워크숍, 지역에서의 자립 생활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즉, 자립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전략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수익 구조로 바꾸는 창의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귀촌은 단지 자연을 누리기 위한 이동이 아니다.
내가 주도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는 선택이다.
반자급 자립이라는 현실적인 방식을 통해,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던 삶의 감각들을 하나씩 다시 찾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바꿔가는 삶이야말로 진짜 변화다.